왕조를 꿈꾼 사람 – 베를루스코니

돈을 벌기 위해 유람선 (크루즈)에서 가수생활도 하고 가가호호 다니며 전기청소기를 팔면서도 밀라노대학교 법학과를 만점으로 졸업한 한 젊은이가 부동산업으로 시작하여 이탈리아 최대부호 중의 한사람이 되었으며 이탈리아 수상직을 네 번이나 역임하였다. 그는 바로 냉전 이후 우익과 좌익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대중매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철학을 제시하면서 우익의 의 환호와 좌익의 배척을 동시에 누리다가 지난 6월 12일 86세를 일기로 영면한 Silvio Berlusconi다.
자신만의 삶과 화법과 야망과 욕망과 희망과 공상으로 가득 찬 이탈리아 현대사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Silvio Berlusconi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삶의 궤적을 나열해야 할 것 같다.
1960년대 초 부동산 및 건설업을 시작하여 1970년대 초 밀라노 근처 Segrate에 계획전원도시 Milano 2를 건설하였고 이어 같은 개념의Milano 3를 건설하였다. 이후 건설업의 공로로 인하여 1977년 산업분야 기사작위를 받으며 부와 명성을 함께 거머 쥐게 되었다.
1976년 국영독점이던 방송운영권이 민영방송사에게 유리하게 크게 완화되자 Telemilano를 인수하였고 이후 Fininvest를 설립하여 Canale 5, Italia 1 그리고 Rete 4를 운영하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국영방송 Rai 1, 2 , 3에 필적하는 전국네트워크를 갖춘 방송사 소유주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유럽방송네트워크를 건설하고자 pay tv인 Tele più를 설립하였고 이어 독일에 Telefunt, 프랑스에 La Cinq, 그리고 스페인에 Telecinco를 각각 설립하였다.
1988년에는 자신이 소유한 방송사와 유통망의 협력작용을 기대하며 대형 슈퍼마켓연쇄점인 Standa를 인수하였다.
1999년에는 무료인터넷서비스포탈인 Jumpy를 설립하여 야유와 구글에 맞서 유럽시장을 석권하려 하였다.
특히 1986년 FC Milan을 인수할 때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처럼 Milan을 상징하는 깃발아래 밀라노의 주요 스포츠를 규합하는 Polisportiva Milano를 구상하면서, 배구, 야구, 럭비, 하키 등 각종 스프츠클럽을 인수하였다.
여기까지라면 한국에도 이에 필적하는 재벌부호도 많이 있다.
그러나 Berlusconi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정치에 뛰어 들게 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이탈리아에서도 정치계가 크게 요동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2차대전 후 상대적으로 대중의 지지도가 높았던 공산당을 견제하기 위해 기민당과 사회당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였기에 이들의 부정부패한 관행을 우익인사들과 미국정부도 눈을 감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연방이 해체된 후 공산주의의 위험이 격감하자 더 이상 기민당과 사회당의 부패를 간과할 필요가 없게 되면서90년대 초반 일명 Mani pulite라고 불리는 뇌물수뢰사건이 시작되어 많은 정치인들이 구속되기 시작했다. 이때 사회당 소속이었으며 수상으로 재직할 당시 민영방송송출권과 관련된 법안을 통과시켜 Berlusconi에게 절대적 혜택을 주었던 Craxi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의 자녀들의 대부이자 자신의 두번째 결혼식 증인까지 되어 준 Craxi의 몰락에 위기의식을 느낀 Berlusconi는 자유실용주의와 신뢰받는 원숙한 정치를 주창하며 1994년 1월Forza Italia 당을 창설하였다. 그 해 3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약 23 %의 득표율로 최대다수당된 Forza Italia는 파시스트의 후신인 사회운동당과 북부이탈리아 분리주의의 Lega Nord와 함께 연정을 구성하였고 여기서 Berlusconi는 정계진출 1년도 채 안 되어 G7의 일국인 이탈리아의 수상이 되었다. 하지만 한 나라의 건설, 금융, 유통, 방송, 언론, 스포츠, 문화는 물론 수상직까지 섭렵하여 자신의 왕조를 천명하는 그 순간부터 Berlusconi는 그 곳까지 오르기 위해 아마도 미필적 고의로 저지를 수 밖에 없던 범죄들이 들어나면서 이후 30 여 차례가 넘는 기소를 당해야 했다.
1961년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마피아와 거래하는 은행을 통해 융자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고, 1972년 Milano 2 건설 당시 근처에 있던 Linate 국제공항의 소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로변경을 로마정계에 로비를 통하여 해결했고, 1984년 당시 수상과의 친분을 통해 제정된 민영방송국 전국송출권허가법의 혜택을 누린 Berlusconi는 이탈리아의 프리메이슨 P2 (Massoneria P2; 1970년대에 이미 조직범죄집단으로 규정되었으며 1982년부터는 공식적으로 해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 일원이었음을 해명해야 했으며 첫번째 수상직을 수행하는 도중 마피아와 관련있다는 의심을 받아 결국 수상직 사임을 해야 했었다. 경제계의 거목이자 일국의 수상으로 이해충돌법에 엮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자신의 지키기 위한 소위 Berlusconi 개인법을 여려 차례 제정해야 했고 탈세문제가 끊이지 않았으며 이와 관련하여 위증교사로 기소되기도하였으며 붕가붕가 사건으로 유명한 미성년자간음으로 법정에 서기도 하였다.
Craxi와의 친분 때문인지 몰라도 사회당을 지지하고 옹호했던 Berlusconi는 중도우파로 정치를 시작한 자본가 출신이기에 주로 좌파측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특유의 화술과 친화력 그리고 정치적 술수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2011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수상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2013년 탈세혐의가 인정되어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 당하고 말았다. 2019년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유럽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복귀를 알린 다음 2022년에는 대통령 출마를 시사하기도 했고 상원의원에도 당선되었지만 새로운 정치세계의 흐름과 테두리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Standa, Tele più, Telfunt, La Cinq, Jumpy, Polisportiva Milano 등이 투자 및 사업실패로 매각되었고 FC Milan도 중국인 기업가에게 넘어간 지금 그가 자신의 왕조를 확고히 이루었다고 단언하기가 사실 어렵다. 그러나 사나운 정적을 돌려 세우고 법의 테두리에서 교묘하게 생존하는 방법을 터특한 Berlusconi는 이탈리아 제 6위의 부호로서 전국방송네트워크를 가진 3 대 민영방송의 소유주이자 동시에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 1, 2, 3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수상이였기에 대중에게 자신의 정제된 이미지와 세련된 정치철학을 언제든 보고 듣게 할 수 있었고 수 많은 방송프로그램에 채워진 그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숭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가 정권의 정점에 있던 시기는 그가 꿈꾸던 자신만의 왕조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궁녀처럼 따라 다니던 수 많은 여성들도 그의 왕조를 구성하는데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매스미디어의 힘과 정치권력을 기반으로 세탁된 이미지의 왕조라는 비난도 중도좌익으로부터 받고 있지만 우연한 기회에 San Raffaele 병원에서 Berlusconi를 직접 조우한 적이 있던 필자는 검사대기 중에 있던 나의 어렸던 딸 옆을 지나다가 친절하고 장난기 어린 미소와 함께 가식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의 딸을 쓰다듬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의 친화력과 흡입력에 대한 대중의 찬사는 부인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다만 Berluconi의 인물에 대한 정당한 판단은 후세 역사가들에 맡기며 고령에도 자신의 왕조를 재건하길 원했던 그가 이제 저 세상에서 평강이 넘치는 왕조에 거하기를 바라며 명복을 빈다.

사족: 좌익 이탈리아당의 정치인 Giovanni Paglia가 한 언론인터뷰에서 Berlusconi의 상속세가 턱 없이 적다며 이탈리아의 상속세 문제를 제기하였다. Fobes에 따르면 Berlusconi의 상속재산이 70억 유로인데 이탈리아의 상속세법에 따르면 Berlusconi의 처와 자녀들은 도합 2억 8천만 유로만 지불하게 된다. 이는 배우자와 직계가족에게 가는 유산은 수혜재산의 4%만 지불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100만 유로 미만일 경우 세금이 없다. Paglia는 이는 다른 유럽국가의 30/40 %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법개정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좀 과하기는 하여 국가적 논쟁거리가 되었지만 삼성은 한국상속법에 따라 110억 유로를 상속세로 지불했다고 강조하였다.

2023.06. 조 민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