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vincere와 Concedere – 설득과 양보

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살고 있는 나라와 자신이 성장해 온 한국과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본인도 역시 이태리란 땅에 살면서 행위와 사고하는 방식에 있어 한국인과 이태리인 간의 차이를 여러 면에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일례로, 사람들 앞에서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고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대단한 무례로 여기는 우리들에게는 온갖 제스처를 써가며 쉴새 없이 수다를 늘어놓는 이태리인들을 만날 때면, 호기심보다는 대체로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식사할 때 갑자기 코를 팽하고 푸는 이태리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아연해 하지 않을 한국사람은 또한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물론 부정적이지 않은 차이점들도 있어, 서로 만나면 구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인사말을 건네고 친한 사이일 경우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볼키스를 하는 것도 우리들에게는 생소하며 (필자는 이제는 익숙해 졌지만), 친한 사이가 되면 연령과 성별의 관계없이 말을 트고 지내는 것도 우리의 존대법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20년도 훨씬 넘게 이태리에 살아 오면서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이자 근본적인 차이점은 이태리어로 ‘convincere’와 ‘concedere’라는 단어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두 단어의 본질적 의미를 분석하면서 문화의 차이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Convincere라는 동사를 분석하면 ‘함께’라는 뜻의 ‘con’과 ‘이기다’라는 뜻의 ‘vincere’가 합해진 단어이다. 이한사전을 보면 ‘설득하다’는 뜻으로 번역이 되어있고 언뜻 보기에 흔히들 말하는 win-win하자는 의미같지만, 이태리어 사전을 보면 ‘이성적 논리의 힘을 통해 상대방이 어떠한 것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게 유도한다’는 의미로 나와있다. 즉, 설득이라기보다는 설복시킨다는 의미가 보다 정확한 뜻이 되겠다. 그러나 이 동사의 숨은 뜻은 설복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속에 상호간의 논리적 투쟁을 거듭하면서 밀고 당기다가 최후에 가서 양측 최대치의 교차점을 찾아 내었다는 것이다. 즉 각자가 상대방을 설복시켰다고 승리를 느끼거나 혹은 만족할 수 밖에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서로 일치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convincere라는 동사의 본질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이태리인들이 기본적이고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사고개념이다. (본인은 이태리 외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판단하기 힘드나 아마도 이것이 유럽인들의 보편적 사고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에 반하여 concedere라는 동사를 살펴보면 역시 ‘함께’라는 뜻의 ‘con’과 ‘물러서다’, 또는 ‘저항하지 않다’라는 뜻의 ‘cedere’가 합성된 단어이다. 이한사전에는 양보하다로 번역이 되어있고 이태리어사전에는 ‘기쁨이나 관용을 가지고 무엇을 준다’는 뜻으로 나와있다. 그러나 con과 cedere라는 두 단어를 가지고 생각하면 보다 본질적인 의미는 함께 뒤로 물러선다라는 뜻이 되겠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 동양, 특히 한국사람의 본질적 사고와 정서라고 하겠다.
한 예로 빵 하나를 똑같이 나누어 둘이 나누어 갖아야만 한는 경우라면 convincere든 concedere든 적용에 있어 문제가 없겠으나, 빵이 불균등하게 나누어졌을 경우에는 이 두 개념의 적용상 근본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이태리인들의 경우 좀 더 큰 쪽은 갖고자 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갖은 논리를 다하여, 상대로 하여금 작은 쪽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아니면 적어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끔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가 성공하면 그것을 양측에서 convincere란 단어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언쟁이라 할 수 있는 논쟁의 합의는 큰 쪽을 갖게 되는 사람에겐 획득의 만족감을 주고, 작은 쪽을 갖게 되는 사람에겐 억눌린 만족감을 주는 상태로 결말을 짓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한국사람은 위에 언급한 상황에 처하면 concedere의 사고에 입각하여 서로가 큰 쪽을 상대에게 권할 것이다. 결국에는 한쪽이 큰 것을 갖고 다른 쪽은 작은 것을 갖게 되겠지만, 큰 쪽을 갖은 사람은 상대측에 대한 보답을 예약하는 만족을 얻게되고, 작은 쪽을 갖는 사람은 자율적이면서도 기대감이 함축된 만족을 얻게 된다고 하겠다.
이태리에도 양보하는 사람들이 많고 한국에도 욕심장이들이 흔히 발견되지만, 자신의 주장과 철학을 실행하고 중대한 결정을 하는 시점에서는 한국인과 이태리인들의 이러한 관념적 차이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자신이 한번 양보하면 상대도 이에 부응하는 양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한국인은, 그 양보를 양보라고 보지않고 주어진 여건상 자신의 권익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이를 최대한 이용하여 최대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태리인들로부터 수많은 금전적 정신적 상처와 피해를 생활 곳곳에서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사고의 차이가 외적으로 드러나 피부로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은, 남을 convincere하기 위해서는 좋게 말해서 언어설득력이지, 결국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실 이태리인들은 정말 자기 주장을 잘하며 엄청나게 많이 말을 쏟아낸다.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 드물지 않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예의, 겸손, 침묵은 금, 상대의사존중 그리고 양보의 미덕 등을 보고 배우며 성장했으며 특별한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concedere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은, 이태리 땅에 살면서 이태리인들과의 관계하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족이 엄청 많은 대화의 소음과 익숙치 않은 언쟁 속에 알게 모르게 피곤한 삶을 보내고 있다.